야설 소녀경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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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장]
개강 하루 전 밤이었다.
방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커튼 사이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천장을 가로질렀다.
지원은 침대 위에 누운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불 속에 깊이 파묻힌 손이 조심스레 복부 위에 놓였다. 따뜻한 살결 아래 미세하게 맥동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주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방 안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지만 그녀는 기다리듯 침묵을 이어갔다.
"나는 조금 힘들었어. 아무 일도 안 했는데도 그렇더라."
손가락이 배 위를 천천히 스쳤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햇빛이 따뜻했어.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어."
속눈썹이 천천히 떨렸다.
그녀는 왼쪽으로 몸을 살짝 돌려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한 손은 여전히 배 위에 얹혀 있었다.
"너도 느끼고 있겠지. 내가 자꾸 조용해지네."
이불 속에서 입김 같은 목소리가 흘렀다.
"미안해. 괜찮은 척해서."
긴 침묵이 다시 흐르다가 그녀는 그녀는 다시 작게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가끔 네가 내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물론 착각이겠지만."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웃음을 조금 더 참았다가 덧붙였다.
"그래도 그런 착각도 좋아.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그녀는 눈을 감고 복부 위에 손을 더 꼭 붙였다. 공기가 몸속에서 천천히 오르내렸다.
"내일은 개강이라 내가 좀 바뻐서 너하고 오래 이야기할 수 없어."
배 위에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움켜쥐듯 굽혀졌다. 그녀는 그 손을 펴지도 굳히지도 않은 채 그냥 눌러두었다.
"유키. 오늘도 잘 자."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숨소리가 점점 깊어졌다.
한동안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눈꺼풀을 다시 조금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유키. 나에게 와서 고마워."
숨소리가 아주 조용하게 이어졌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며 커튼이 흔들렸고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방 안은 더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제154장]
개강 당일 아침이었다.
지원은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진 피로로 눈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파운데이션을 덧바르고 다크서클을 가렸다. 볼에는 혈색을 살짝 더하고 눈가는 최대한 밝게 처리했다.
립스틱을 바를 때 손이 조금 떨렸지만 금세 가다듬었다. 거울 속 얼굴이 한층 또렷해지자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옷장을 열어 상의부터 꺼냈다. 품이 넉넉한 아이보리색 니트를 몸에 걸쳤고 그 위에 짧은 회색 조끼를 겹쳐 입었다.
허리선을 흐리게 하고 복부를 덜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의는 신축성 있는 하이웨이스트 청바지였다. 배를 지나치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외형상 라인을 정리해주는 옷이었다.
바지를 입고 나서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옆모습을 확인했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배 쪽을 한 번 짚었다.
"이 정도면 모르겠지."
혼잣말처럼 말한 뒤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포장된 식빵과 오렌지 주스였다.
그 옆에는 생강 슬라이스를 넣어둔 유자청과 소금기 적은 크래커 몇 봉지가 있었다.
아래 칸에는 삶은 감자와 바나나가 따로 정리돼 있었다.
그녀는 오렌지 주스를 꺼내 컵에 따르고 식빵 두 조각을 접시에 담았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지."
작게 중얼이며 식탁에 앉아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식빵을 한 입 베어물고 주스를 마셨다. 시큼한 향이 입안을 맑게 씻어주었다. 속이 비어 있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구역질은 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일어나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챙겼다. 닭가슴살과 삶은 당근 약간.
모두 냄새가 거의 없는 메뉴였다. 뚜껑을 닫고 가방에 조용히 넣었다. 접시와 컵은 싱크대에 옮겨 물로 헹군 뒤 건조대에 올려두었다.
현관 앞에 선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했다.
상의 밑단을 살짝 당겨 조끼 아래로 드리우고 배를 한 번 눌러보았다. 두 손이 살짝 떨렸지만 곧 다잡았다.
"괜찮아. 평소처럼 하면 돼."
입술을 다물고 가방을 멨다. 현관문을 여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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