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녀경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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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왕검성"이란 이름으로 "소녀경"이라는 연재 소설을 올리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제 게시판 정책을 위반하는 바람에 이전에 사용하던 계정은 물론 모든 게시물이 삭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업소 후기까지 다 삭제가 되었습니다.




제 부주의가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 다시금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전 내용은 복구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늘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제55장]




인천 공항 도착층 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지원은 목도리를 목 깊숙이 당겨올렸고 승호는 무거운 여행용 가방 손잡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지원의 손에도 작은 가방이 들려 있었다. 둘은 말없이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공항 천장의 유리 패널 아래로 낮은 햇살이 떨어졌다.




여행을 막 마친 사람들 특유의 여운이 두 사람의 표정에 옅게 내려앉아 있었다.




회색 벽면을 따라 주차장까지 이어진 통로는 조용했고 두 사람의 캐리어 바퀴 소리가 멀게 울렸다.




승호의 검은 세단이 주차된 칸 앞에 다다르자 그는 트렁크를 열고 지원의 짐부터 조심스럽게 실었다.




지원은 작은 가방을 먼저 올려두고 잠시 트렁크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아직 여행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처럼 차 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시간을 아주 조금만 붙잡고 싶다는 듯이.




차에 오른 두 사람은 안전 벨트를 매고 나서야 서로를 마주 보았다.




무언의 눈짓 하나로 웃음이 오갔고 차가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지원이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창밖을 흐르는 도시 풍경을 보며 그녀는 여행 중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눈 내리던 골목.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욕탕 물에 잠긴 채 올려다본 목욕탕 천장. 그리고 유키.




승호는 간간히 짧은 대꾸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꺼내는 이야기마다 천천히 따라갔다.




지원의 말투는 들떠 있었고 손짓은 여운을 지우지 못한 사람처럼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말이 이어지던 중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수석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찾아온 듯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었다.




승호는 운전대를 잡은 채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고개를 돌렸다.




잠든 얼굴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며 그의 시선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 눈빛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사랑스러움. 애처로움. 그리고 묵직한 미안함.




무언가 더 해주지 못한 사람만이 가지는 조용한 감정들이 얼굴선 아래 고요히 흘러내렸다.




해 질 무렵 차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 승호는 시동을 끄고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지원은 여전히 잠든 채 숨을 고르게 내쉬고 있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지원은 눈을 천천히 떴고 곧 승호의 얼굴을 인식하자 미세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입꼬리가 무겁게 내려앉으며 미안함이 담긴 눈빛이 그를 향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챙겨 문을 열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려던 순간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이제는 말이 필요 없는 거리였다. 그저 눈빛 하나, 짐을 건네는 손끝에서조차 서로를 감지하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은 뒤에도 지원은 쉽게 몸을 돌리지 않았다.




아파트 출입문까지 몇 걸음 남짓이었지만 그 거리가 마치 여행을 완전히 끝내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짐 손잡이를 다시 잡으려다 말고 승호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승호 역시 차에 타지 않고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둘 사이에는 말이 없었지만 눈빛으로만 전하는 인사가 있었다. 짧지만 조용하게 쌓인 시간들 위에 덮인 이별의 장면이었다.




지원은 천천히 몸을 돌려 아파트 출입문으로 걸어갔고 승호는 문을 여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천천히 차로 돌아와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그의 손끝에는 여전히 미약하게 남은 체온이 묻어 있었다.




승강기 앞에서 지원은 짐을 세워두고 카드키를 꺼냈다. 문이 열리고, 짐을 밀어 넣고 난 뒤 좁은 공간 안에 홀로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화장기 빠진 얼굴. 입가에 남은 미소. 그리고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이별의 온기.




층수를 알리는 붉은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현관 앞에 섰다.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자 익숙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실내의 공기가 맞이했다.




짐을 밀어놓고 신발을 벗은 그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이 집. 이제는 다시 혼자인 공간.




거실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고 실내는 여전히 정돈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지원은 천천히 가방을 바라보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다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원은 짐을 한쪽에 그대로 둔 채 주방으로 향했다. 찬바람이 스며든 몸이 아직 덜 녹아 있었다.




전기 주전자를 채우고 전원을 누른 뒤 찻잔 하나를 꺼내 조용히 내려놓았다.




주방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조금 지쳐 있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만의 느긋함이 어렴풋이 깃들어 있었다.




물 끓는 소리가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지원은 거실로 와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등을 깊숙이 기댄 채 숨을 한번 고르듯 길게 내쉬었다.




아무 말도 없는 집. 아직 펼쳐보지 않은 짐.




그 안에 담긴 며칠간의 기억들이 조용히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지원은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들려올 거라 예상하지 못한 소리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월패드 앞으로 다가가 화면을 켰다.




순간, 눈동자가 커졌다.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숨이 멈춘 듯 정지된 표정.




화면 속엔 두 달 전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던 남자가 서 있었다. 김기준.




그는 전보다 야위었고 낯익은 패딩 안으로 두 손을 모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지원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표정에는 놀람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망설임이 찾아왔다. 그녀는 한 발짝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갔다.




손을 들어 인터폰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고 숨을 고르려 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순간,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어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한층 더 절박한 리듬이었다.




지원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현관 앞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겨울 바람을 끌고 기준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지원은 문틈으로 보인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하지만 곧 이내 경직된 표정으로 묻는다.




"왜 왔어?"




낮고 단호한 어조였다. 막 여행에서 돌아온 피로 위에 준비되지 않은 현실이 던져졌다.




기준은 바로 말을 꺼냈다.




"아까 백 교수님하고 헤어지는 것 봤어. 네 아파트 앞에서."




지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러나 반응은 짧고 단호했다.




"그게 오빠랑 무슨 상관인데?"




그녀는 문을 닫으려 했다. 기준은 다급하게 문틈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소녀경!"




그 단어는 가볍지 않았다. 기준의 입에서 떨어진 순간, 짧은 정적이 모든 것을 붙들었다.




지원의 손이 멈췄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끝이 천천히 떨렸다. 입술이 조금 열리다 다시 다물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물기 대신 냉기와 충격이 겹쳐 깃들어 있었다.




"그 말...어디서 들었어?"




기준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들은 것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까지 다 퍼졌어."




지원은 복도 뒤쪽을 잠깐 돌아봤다. 계단과 승강기. 인기척은 없었다.




그녀는 다시 기준을 바라보며 낮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준이 조용히 덧붙였다.




"얼마전에 전화했어. 그런데 번호 없는 번호라고 안내가 나오더라. 그래서 직접 올 수밖에 없었어."




문 앞에서 지원은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문을 닫지도, 완전히 열지도 않은 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표정은 사색이었고 입술은 말없이 떨렸다.




그러다 천천히 문을 더 열었다. 복도의 냉기를 잠시 등지고 그녀는 몸을 옆으로 비켰다.




"들어와."




기준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무언가를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은 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기준은 소파 앞으로 와서 천천히 앉았다.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두 손을 무릎에 올린 그는 말이 없었다. 지원은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전기 주전자는 이미 끓고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하나 더 꺼내어 커피를 두 잔 내리고 그중 하나를 조용히 쟁반에 올려 거실로 가져왔다.




아직 짐이 풀리지 않은 거실 한켠을 지나 소파 앞에 조심스럽게 커피를 내려놓았다.




기준은 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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