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녀경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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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장]
어두운 침실 안에서 두 사람의 호흡소리만이 가라앉았다.
오후의 희미한 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와 욕의 위로 먼지처럼 앉았다.
승호의 어깨뼈가 날카롭게 드러난 등이 지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피부는 창백하게 반짝였고 갈비뼈의 윤곽이 마치 종이 장판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교수님. 많이 피로해 보이세요." 지원의 손이 공중에서 망설이듯 멈췄다.
"나이 탓이겠지."
승호의 대답이 침대 스프링을 타고 전해졌다.
그의 손등에 드러난 푸른 혈관이 마치 지도처럼 복잡하게 뻗어 있었다.
"이 늙은 몸이 젊은이를 따라가기엔 무리였나 보군."
지원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소녀경 초고를 바라보았다.
승호의 필체로 빼곡히 채워진 여백이 그의 고집스러운 연구 열정을 증명하고 있었다.
"오늘은 쌍앵상주를 완결지어야겠다."
지원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의 눈꼬리에서 반사된 조명이 어둠 속에 반딧불처럼 번쩍였다.
"알겠어요."
지원의 대답이 침대 위에서 가볍게 맴돌았다.
그녀는 영화 촬영장에 들어선 배우처럼 마음을 가다듬었다. 실증 과정에서 일어날 모든 신체적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각오였다.
승호가 체위의 자세를 설명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가락 관절이 마디마디 부어오른 것처럼 보였다. "먼저 양측의 고관절 각도를 45도로..."
"이 체위는..." 그의 어투가 갑자기 강의실에서 설명하듯이 차분해졌다.
"양기의 상승과 음기의 순환을 동시에 자극한다. 남성은 정액의 생성을 촉진하고 여성은 자궁의 기운을 고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지원은 승호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陽氣上升(양기상승)하며 陰氣循環(음기순환)하니 男則促精生(남즉촉정생)하고 女則調宮氣(여즉조궁기)하리라."라고 번역했다.
승호가 지원을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정확한 번역이군."
그의 목소리에는 지원에 대한 진정한 감탄이 스며있었다. 지원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배시시 웃었다.
곧바로 승호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여성의 경우 골반 근육에 압력이 가해져..."
지원은 조용히 승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소녀경 책자가 바람에 살짝 넘어가며 종이 번지는 소리를 냈다.
승호의 목소리는 계속되었지만 지원의 귀에는 점점 자신의 심장 고동만이 더 또렷하게 울렸다. 그녀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스쳤다.
연구를 위한 순수한 실험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으나 어째선지 승호의 부르르 떨리는 손가락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까 이 체위의 핵심은..."
승호의 목소리가 갑자기 흐려졌다. 그의 입술이 창백해지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원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순간, 그녀의 얇은 옷자락 끈이 느슨해지며 어깨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괜찮아."
승호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고르려는 듯 말끝이 약간 떨렸지만 여전히 침착해 보였다.
지원은 승호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욕의 끈은 여전히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채 움직임 없이 가슴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승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평소보다 한층 민감해 보였다.
빛이 닿은 자리는 유독 따뜻한 기색을 머금었고 유두 주변은 눈에 띄게 착색되어 있었다.
손끝에 닿으면 가볍게 저릴 것 같은 팽팽함이 피부 아래 번져 있었다.
가슴의 곡선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승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조용한 긴장감과 미세한 변화의 기운이었다.
지원은 승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조용하고 논리적이었지만 오늘은 그 말끝 어딘가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발음의 흐트러짐이나 감정의 격앙도 아니었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감추려는 무엇이 음성 아래에 얇게 깔려 있었다.
지원의 눈동자가 천천히 그의 얼굴로 향했다. 창백한 입술. 평소보다 깊어진 눈 밑의 그늘.
어깨선은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가 단어 사이사이마다 짧게 숨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의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도 그의 이마에 번진 가느다란 땀은 분명하게 보였다.
말을 이어가는 동안 손끝이 책장 모서리를 두드리는 습관적인 동작도 오늘따라 유난히 느리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지원은 그를 바라보며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조여드는 기분을 느꼈다. 다른 날과 달랐다.
단지 기분 탓이라고 넘길 수 없을 만큼 지금의 그는 분명 더 약해 보였고 더 외로워 보였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며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옷깃 가까이 가져갔다.
무언가를 말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무슨 말을 해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그녀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몸짓. 호흡. 얼굴선.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눈앞에서 아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침대 위에 놓인 승호의 연구 노트가 바람에 살짝 넘어갔다.
그 사이로 보이는 페이지에는 쌍앵상주 도식과 함께 "체위 유지 시간: 30분"이라고 적힌 메모가 있었다.
지원은 문득 그 시간이 지금의 승호에게는 너무 과한 요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까부터 그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고 손끝의 떨림은 억제하려 할수록 더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체위 실증보다 이 사람의 건강이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승호의 고집을 잘 아는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62장]
승호가 침대 중앙으로 천천히 몸을 이동했다.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무게가 서로를 향해 기울어졌다.
"이렇게..."
승호의 손이 지원의 허리 아래를 받치며 정확한 각도를 잡아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지만 동작은 놀랍도록 전문가다웠다.
지원이 승호의 지시에 따라 다리를 구부리며 안내에 순응했다.
그 순간 지원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제가 지난 주에 교수님에게 하고 싶다고 했던 자세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어린 도발이 깃들어 있었다.
승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의 눈가 주름이 깊어지며 평소 보여주던 다정한 미소가 되살아났다.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
두 사람의 무릎이 맞닿았다.
지원의 체온이 승호의 차가운 피부를 데우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호흡이 점점 동기화되어 갔다.
일본 여행 초기엔 실수로 스치기만 해도 움찔했던 신경질적인 반응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승호가 지원의 어깨를 살짝 누르며 체위를 완성했다.
"호흡은 평소대로."
그의 말투는 여전히 지도교수다웠지만 이제 그 사이사이에 익숙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호의 팔뚝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거리감의 소멸이었다.
"교수님. 팔 위치가 이게 맞나요?"
일부러 교과서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녀는 승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승호의 미소가 조금 더 커졌다. "훌륭하군."
그의 손이 지원의 등 아래를 지탱하며 소녀경에 기록된 각도를 정확히 재현했다.
두 사람의 체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본에서 말 못했던 무언가가 마침내 완성되는 듯했다.
지원은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균형을 맞추며 승호 쪽을 바라보았다.
상체를 약간 기울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쌍앵상주하고 대면좌위(對面坐位)의 차이점이 뭐죠?"
질문은 단순했지만 눈빛은 그보다 더 복잡한 것을 담고 있었다.
승호는 눈을 깜빡이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낯익은 설명 모드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좋은 질문이야."
그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으며 두 손으로 책상 너머 허공에 도식을 그리듯 손을 움직였다.
마치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체위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할 때처럼 목소리는 또박또박했고 말투에는 긴장이 없었다.
"두 체위 모두 남녀가 마주 보고 앉는 형태라는 점에서 기본 구조는 비슷하네. 다만 대면좌위는 상대의 체중이 골반에 수직으로 내려앉는 구조이기 때문에 허리 근육의 지지가 핵심이고 호흡과 시선 교환이 중심이 되는 형태야."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승호는 시선을 그녀의 눈에 잠시 맞췄다 다시 설명으로 돌아갔다.
"반면 쌍앵상주는 구조적으로 허리보다 등 전체를 지지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양팔의 교차나 허벅지의 밀착 같은 신체 접점이 훨씬 많아. 특히 등 쪽에서 손이나 팔꿈치를 받치는 구조가 더 정교하게 요구되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원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래서..."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면좌위는 자세가 단순한 만큼 비교적 자유로운 키스가 가능하고 눈 맞춤이 자연스럽게 유지돼. 반면 쌍앵상주는 자세가 깊이 들어가면 입술 간 거리가 짧게 유지되지만 지지 위치에 따라서는 키스가 어려운 경우도 있어."
지원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복잡하네요."
"하지만 잘 구현하면..." 승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쌍앵상주는 대면좌위보다 훨씬 더 강한 정서적 동기화를 이끌 수 있어."
그는 마지막 말을 덧붙인 뒤 시선을 내렸다. 지원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쌍앵상주 체위에서 깊은 키스를 하려면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해요?"
지원의 어투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마치 오랜 연구 과정을 공유하는 질문처럼 들렸다.
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었다.
"이렇게..."
그의 손이 지원의 골반을 천천히 조정했다.
무릎의 각도를 맞추고 허리를 살짝 기울여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더 다가오도록 유도했다.
마주보는 각도는 깊어졌고 입술과 입술 사이의 간극이 거의 사라졌다. 지원의 호흡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승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눈빛에는 장난기가 살짝 번졌고 입술 끝에는 묘한 결심이 걸려 있었다. 눈사람 유키를 만들던 그 천진난만함도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승호의 목 뒤로 팔을 감더니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승호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숨이 턱 끝에서 멈췄고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지원의 입술이 닿은 그 짧은 충격 속에서 무너진 것은 단지 이성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자신이 그어두었던 선.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애써 눌러두었던 감정. 그리고 한 번도 건너지 않았던 거리.
모두가 그 키스 하나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은 채 그의 입술에 머물렀다. 어떤 요구도 없었고 강요도 없었다. 단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받아달라는 식의 말 없는 고백이었다.
승호의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눈을 감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 순간, 그도 마침내 받아들이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른 뒤처럼 그들의 호흡은 하나로 이어졌고 마주 앉은 채 체온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지원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승호의 욕의를 가볍게 넘겼고 자신의 어깨에 걸친 끈도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동작은 서두름이 없었고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말 대신 이어진 어떤 신호처럼 조용했다.
승호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 품 안에는 긴 시간 눌러온 감정이 말없이 숨 쉬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키스가 끝나자 지원이 입술을 떼었다.
"노천 온천이면 더 좋았겠죠?"라고 조용히 말했다.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지원이 원래의 자세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씨익" 웃어보이고 "교수님. 시작해요."라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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