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소녀경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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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장]
햇살이 조금 더 깊게 객실 안으로 스며들 무렵 두 사람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몸 그대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지원이 먼저 욕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원이 먼저 발걸음을 변기 쪽으로 옮겼다.
아무렇지 않게 앉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승호를 바라보며 짧게 웃었다.
"씨익."
그 미소에는 아무 거리낌도 없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러웠다.
물 내리는 소리가 욕실에 울렸고 지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번에는 승호가 조용히 그 자리에 섰다.
지원은 무심히, 그러나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은 거울 너머에서 잠깐 마주쳤고 말이 없어도 그 순간,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은 양치질을 시작했다.
거품이 묻은 칫솔 사이로 잠깐씩 눈을 맞추며 서로의 어깨가 가볍게 스쳤다. 말없이 주고받는 표정 속에는 이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평온이 있었다.
곧이어 샤워기가 틀어졌고 따뜻한 물줄기가 타일 바닥을 두드렸다.
지원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 아래 섰다. 승호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물에 젖은 비누 거품이 그의 손에서 그녀의 등을 타고 흘렀고 곧이어 그녀도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몸을 씻었다. 그 손길은 실증을 위해 움직이던 때의 긴장과 목적이 아닌 오롯이 정리와 해방 그리고 따뜻한 작별의 감정이었다.
지원의 눈빛은 가벼웠고 그녀의 숨결에는 안도감이 실려 있었다.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그 지난 시간의 무게를 씻어내는 듯한 순간.
그들은 이제 자유로웠다. 서로에게도 그 시간에도.
[제120장]
해변가에는 낮은 파도가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호텔 식당을 나선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고 햇살은 잔잔하게 발끝을 따라붙었다.
지원은 승호의 팔에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기대듯 그러나 힘을 실지 않은 가볍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두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고 모래 위에 남겨지는 발자국도 서로 겹쳐갔다.
한참을 걷던 승호가 옆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 점심 너무 적게 먹은 것 아닌가?" 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서려 있었다.
식당에서 지원이 식빵 몇 조각과 오렌지 주스를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있었다.
지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약간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긴장이 좀 풀려서 그런지 입맛이 잘 안 생기네요."
말은 담담했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묘하게 무거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승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걸음에 보조를 맞췄고 지원은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채 조금 더 그의 어깨에 기댔다.
바닷바람은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고 두 사람은 그 조용한 파도 소리 사이로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모래 위를 따라 한참을 걷던 지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교수님..."
그녀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눈빛으로 승호를 바라보았다.
"체위 실증은 원래 3개월이었잖아요. 왜 2개월만에 끝난 것인가요?"
승호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잠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짧게 웃었다.
"생략해서 그래."
지원은 놀란 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승호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라서..."
목소리는 낮았고 말끝에는 작게 묻힌 미소가 섞여 있었다. 어떤 설명보다 더 정확한 말이었다.
지원은 그제야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담긴 배려와 신중함. 그리고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속뜻을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읽어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팔짱을 끼고 있던 손에 살짝 더 힘을 주었다.
그 작은 감동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바람이 지나가는 결처럼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번져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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