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소녀경 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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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장]
창문 밖의 하늘은 더 이상 새벽도 아니고 아직은 아침도 아니었다.
빛은 있었지만 선명하지 않았고 그림자는 있었지만 분명하지 않았다.
해는 떠오르려는 중이었고 하늘 끝자락은 연하게 물들고 있었다.
세상 전체가 아주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호텔 창문 너머로는 바다의 수면이 은색 안개처럼 번졌고 해안 도로 위에는 아직도 차 한 대 지나지 않았다.
객실 안의 공기는 정적에 가까웠고 침실은 여전히 이불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 속에서 지원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설잠에서 깬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숨을 골랐다.
그러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미끄러지며 어깨를 타고 내려가자 그녀의 피부 위로 아침 공기가 살짝 스쳤다.
그녀는 말없이 침대 옆으로 다리를 내렸다. 이불 밖으로 나온 몸은 그대로였다.
단 한 조각의 옷도 걸치지 않은 채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객실은 아직 어둡고 조용했지만 창가의 빛이 아주 희미하게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지원은 머리칼을 뒤로 넘긴 뒤 욕실로 향했다.
알몸의 발걸음은 무언가를 정리하듯 단정했고 조용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침대에 남아 있던 승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무겁게 깨어난 시야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욕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 시야에 들어왔다.
빛이 완전히 들지 않은 공간 속에서 그녀의 실루엣은 한 장의 스케치처럼 흐릿하고도 정확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 속에 누운 채 그녀의 걸음을 조용히 따라가며 바라보았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흐르는 물소리가 객실 안의 침묵을 부드럽게 깨기 시작했다.
그 소리 속에서 승호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지 못한 채 천장을 응시했다.
욕실 안은 아직 따뜻한 수증기로 가득하지 않았다.
찬 기운이 바닥 타일을 따라 은근히 배어 있었다.
지원은 변기 앞에 천천히 앉았다. 몸을 구부리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복부 안쪽에서 천천히 요동이 시작되었고 곧 그것은 방향을 잃은 파도처럼 안쪽을 밀어올렸다.
속은 이미 비어 있었지만 장벽 깊숙한 곳에서는 또다시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압박이 밀려왔다.
지원은 고개를 약간 떨군 채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두 번째 관장이었다.
입술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단히 다물렸고 이마에는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졌다. 마치 밤새 누적된 고통이 다시 한 번 밀려오는 듯했다.
참으려 애쓰는 눈썹이 찌푸려졌고 광대 아래로 떨림이 번졌다.
복부 깊은 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무언가가 힘겹게 쏟아졌다.
허리는 떨렸고 손끝은 차가운 변기 커버를 꼭 쥐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녀는 조용히 물을 내렸다.
물살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아주 작고 길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무릎을 모은 채 몸을 굽혔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움직임은 무겁고 더뎠다.
샤워기의 수도 꼭지를 틀자 차가운 물줄기가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살갗을 때렸고 곧 온수가 퍼지며 몸 전체를 감쌌다.
지원은 벽에 손을 짚고 물을 맞았다.
머리칼은 이내 축축히 젖었고 눈동자에는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그녀는 샴푸도, 비누도 손에 들지 않았다.
그저 물에 서 있는 채로 흐르는 시간과 함께 피로를 씻어내려 했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등줄기 아래로는 긴장감이 거의 사라진 채 물에 맡겨져 있었다.
피곤이 전신을 눌렀고 그 얼굴에는 화장기 없는 순전한 탈진만이 남아 있었다.
눈가는 붉었고 뺨은 조금씩 움푹 꺼져 있었다.
그녀는 샤워기 아래에서 고개를 약간 젖힌 채 눈을 감았다.
물이 이마를 타고 흘렀고 턱 끝에서 한 줄기씩 떨어졌다.
그 순간,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정적이 욕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욕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안쪽에서 퍼져나온 습기 어린 공기가 객실 안으로 천천히 흘렀다.
지원은 온몸에 대형 수건을 감고 문턱을 넘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렀고 발끝에는 물방울이 작게 맺혀 있었다.
그녀는 방 안을 한 번 둘러보다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승호를 발견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걱정과 무언가 눌러 담은 침묵이 함께 담겨 있었다.
지원은 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그 앞에 섰다.
그러다 수건에 감싼 채 그의 품 안으로 조용히 파고들었다. 승호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가슴에 닿았고 물기가 피부에 스며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용히 두 팔을 들어 그녀의 등을 감쌌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동작은 크지 않았지만 분명한 위로였다.
규칙적인 손길이 마치 숨을 맞추듯 이어졌고 지원은 두 눈을 감은 채 그의 품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
잠시 뒤 승호는 그녀의 등을 살며시 떠밀듯 손을 내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말없이 침대를 벗어나 이불 위에 놓인 수건 하나를 집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몸은 여전히 적막 속에 있었다.
알몸 그대로 욕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움직임이었다.
지원은 침대에 앉은 채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등과 어깨와 허리의 윤곽이 점점 어둠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작고 부드러웠다.
객실 안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지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114장]
욕실 안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한 진동처럼 객실로 번져 나왔다.
지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등을 약간 구부린 채 수건을 몸에 감은 그녀는 고요한 객실 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몸 안쪽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감각이 있었다.
그녀는 이불 위에 앉은 채 천천히 손을 배 위로 옮겼다.
손바닥이 피부에 닿자 거기에는 분명히 빈속이어야 할 공간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특유의 거북함이었다.
무언가가 복부 어딘가에 걸린 것처럼 빈 공간인데도 비어 있지 않은 듯한 이질감.
"아까 다 비웠을 텐데..."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젯밤에도, 아침에도 전부 다 비워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남아 있지."
손으로 배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 움직임은 다독이는 것에 가까웠다.
갑작스러운 통증은 없었지만 미묘한 팽창감과 묵직한 불쾌함이 천천히 몸 안에 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한번 길게 내쉬며 손끝으로 복부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 느낌은 오히려 어제의 관장이 남긴 여운이라고 믿는 쪽이 더 편했다.
"긴장을 너무 오래 했나..."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손을 배 위에 얹은 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욕실 안에서 여전히 물소리가 이어졌다.
지원은 그 방향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려 자신이 올려둔 손바닥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침대 위의 공기조차 그 몸짓에 조용히 눌려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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