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녀경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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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장]




지원은 아까 승호와 실증하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택시 시트에 등을 기대는 순간, 목덜미에서 땀이 식었다.




승호의 입술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타고 내려가던 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기준에게조차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체위였다.




지원은 숨을 삼켰다. 숨이 들이켜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숨소리조차 더럽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자신이 그것을 해냈다.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연기였으니까.




아무 저항 없이 몸을 올렸다. 입을 벌렸고 눈을 감았다.




지원은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손이 떨렸다.




창밖을 보는 척하며 자신의 눈동자를 피해갔다. 창문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다.




불쾌하고 더러웠다. 자신이 역겨웠다.




몸을 벌린 것도, 위에 올라탄 것도, 느끼고 말았던 것도.




차오르는 울컥함을 삼키려 했지만 목이 조였다. 피부 아래로 뭔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지원은 입술을 꾹 눌렀다. 혀끝이 짠맛을 느꼈다. 모욕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택시는 조용히 속도를 줄였다. 운전 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라디오는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지원은 두 눈을 감았다. 기억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가 아래에서 숨을 쉬던 감각. 자신이 허리를 내리누르며 느꼈던 감각.




멈춰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몸이 앞섰다. 의지가 밀렸다. 그래서 역겨웠다. 지원은 눈을 떴다. 눈동자 가장자리에 물기가 맺혔다.




지원은 택시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나약해지지 말자." 입술을 꾹 눌렀다.




"어차피 메소드 연기였어." 자신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현실과 영화를 착각하지 말자. 감정은 감정일 뿐이야. 그냥 연기였고 설정이었어. 지금 느끼는 수치심도 설정된 감정일 뿐이야."




지원은 숨을 길게 들이켰다.




"교수님과 나는 사제지간이다. 나는 교수님과 실증했을 뿐이야. 더구나 일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연구잖아."




지원은 손끝으로 허벅지를 꼭 눌렀다. 아직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 떨림조차 논문 속 한 줄로 바꿔야 했다.




"나는 교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잖아." 속으로 뱉은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언제든 누구하고도 동침할 수 있잖아." 단호하게 이어졌다.




"누구든 상관없잖아." 그 말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원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교수님은 그냥 실험 상대일 뿐이야. 그냥 연구일 뿐이야."




그 말만이 지금의 자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택시는 교차로 앞에서 잠시 멈췄다. 운전 기사는 말없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낮은 볼륨으로 뉴스를 전하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말레이시아 고속 도로에서 야생 아기 코끼리가 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입니다...사고 직후 어미 코끼리가 트럭에 머리를 밀며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포착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지원은 아무 생각 없이 소리를 들었다. 시선은 창밖의 불빛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뱃속 어딘가가 묵직하게 당겨왔다.




그녀는 말없이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눌렀다. 차가운 손바닥이 따뜻한 복부 위를 조심스럽게 누볐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목 뒤가 서늘했다.




유키.




그 이름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만들었던 존재. 작고 조용하고 외로웠던 기억.




지금은 없다.




지원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고일 듯했다.




트럭에 머리를 대고 있던 어미 코끼리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올라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몰랐다. 왜 그렇게 슬픈지 알 수 없었다. 슬픔은 설명 없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지원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운전 기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고 어두웠다.




손은 아직 배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작은 떨림이 손끝에 머물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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